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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기 연세인]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
작성일
2021.12.31
작성자
공과대학 홈페이지 관리자
게시글 내용

연세대학교 홍보팀 /  news@yonsei.ac.kr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 

건축으로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유현준 건축가(건축공학 88)

 


건축의 본질을 보는 건축가 

길을 가다 보면 거리에 디자인이 독특하거나 웅장하거나 세련된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건축이란 이처럼 형태가 멋진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집, 거리, 사무실, 공원 등 수많은 공간 속에서, 건축물의 안과 밖에서 펼쳐진다. 문을 열면 거리가 나오고 거리를 걷다 상점에 들어가거나 잠시 벤치에 앉기도 한다. 사무실 창을 열면 건너편 공원의 나무들도 볼 수 있다. 건축은 우리 삶 속에서 사람과 공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멋진 건물도 의미 있지만,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관계’다. 유현준 동문은 그 본질을 가장 잘 알고 표현해 내는 건축가다. 



건축설계에 온전히 몰입한 대학 시절 

유현준 동문이 건축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수학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과목보다 미술, 지리, 지구과학, 물리 등 더 본질적인 것에 접근해 파고들고, 스스로 생각하며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기질 덕분이다. 어린 시절에는 발명가를 꿈꾸기도 했을 정도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걸 좋아했다.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 겹쳐지는 지점이 바로 건축공학이었다. 그에게 우리 대학교 수업의 자율적인 분위기는 더욱더 잘 맞았고, 건축학도로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질 수 있었다.


“건축설계 수업 시간이 가장 재밌었어요. 건축설계에는 자신의 생각을 넣어야 하거든요. 특히 교수님들께서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하지 않으셨어요. 매우 유연하게 풀어주셨죠.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었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자율성이 있었어요. 또 학생들끼리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는 시간들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2학년,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을 들으며 건축설계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점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열정적인 건축학도로 캠퍼스 생활을 했다. “건축설계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설계 이외의 일들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 매주 일요일 밤에 한 주간 입을 옷을 정해 단벌로 금요일까지 버텼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졸업 작품 준비는 꽤 힘들었다고 추억한다.


“당시 건축설계 수업은 단 3학점이었어요. 하지만 30학점 이상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했죠. 졸업 작품 준비 때 보름 정도 샤워를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샤워를 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았어요. 밤새우고 작업을 하다 쓰러져 자고 다시 깨어나 또 작업을 했지요. 그렇게 만든 작품이 인간의 직관적이고 정성적인 사고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균형과 융합을 표현하고자 했던 ‘배움과 사색의 공간(Analog v. Digital)’이었어요. 한쪽에는 도서관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사색하는 곳이 얽혀 있는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많은 고민과 열정 속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은 대한민국건축대전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건축 공모전이 거의 없었던 당시, 대한민국건축대전은 전국의 뛰어난 건축학도들이 다 모이는 결전의 장이었다. 유 동문이 건축대전에서 수상한 해는 한동안 수상 실적이 없었던 우리 대학교에서 유 동문을 포함해 3명이 수상하며 큰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까지 연세대학교는 설계 분야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많았어요. 현재 유명 건축가이기도 한 조민석 선배가 수년 전에 특선을 받으셨고 한동안 수상이 없다가 저희 때 3명이나 특선 이상의 수상을 하게 됐죠. 대거 수상은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때부터 건축설계 쪽에서도 우리 학교의 위상이 확 달라졌죠. 또 그즈음, 선배들이 컬럼비아, 예일 등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가기 시작했어요. 높은 문턱으로 여겼던 해외 유수 대학들이, 우리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게 됐지요.” 




세계 최고들과 함께한 성장의 시간 

유학을 떠나 두각을 나타내는 선배들을 보며 유현준 동문도 유학을 꿈꿨다. 영화에 나오던 아이비리그가 가까운 곳에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세계의 뛰어난 건축학도들과 진검승부를 겨뤄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졸업 후 유학을 떠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각각 건축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이비리그 최고의 명문 대학 두 곳에서 각 학교만의 학풍과 서로 다른 커리큘럼을 접하며 건축가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MIT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대학교예요. 새로운 첨단 기술을 빨리 도입해서 어떻게 새로운 건축을 할 것인가를 연구하지요. 인공지능과 같은 매우 혁신적인 기술 적용을 연구하는 학풍과, 한편으로는 오래된 학교답게 매우 전통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공존해 둘 다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방학 때마다 진행되는 세계 건축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페루 잉카문명까지 세계 곳곳의 주요 건축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많은 영감을 줬어요. 반면에 하버드는 마치 모던한 바우하우스 스타일 같다고 할까요. 소그룹인 MIT와 달리 학생 수도 매우 많아 20개 이상의 스튜디오가 있었죠. 2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동시에 진행 중인 다양한 프로젝트를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뛰어난 인재들과의 선의의 경쟁은 그를 더 단단하게 단련하고 폭넓은 시야를 갖게 만들었다. 건축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은 하버드 우등 졸업이라는 성과를 냈고, 유 동문는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버드 졸업반 때 한 교수님께서 ‘닮고 싶은 건축가가 있다면, 그 밑에서 일하지 않고서 그 사람처럼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셨어요. 리처드 마이어는 제가 대학시절부터 잡지에서나 보던 우상 같은 존재였죠. 제 포트폴리오 중 주택에 관한 논문 하나를 보고 저를 뽑으신 거예요.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나도 저런 사람처럼 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리처드 마이어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중에서 맨해튼 찰스 스트리트 고급 아파트 프로젝트(Charles Street Apartments, New York)를 담당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그린 설계도면이 실제로 완성돼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매 순간 희열을 느꼈다. 설계도면과 현장 시공 과정에서 차이를 조정하고 조율해야 할 것들을 해결하며 이론과 실제를 오갔다. 또 로마 시내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로 신축 허가가 난 역사적인 건축물을 짓는 프로젝트(Ara Pacis Museum, Rome)에 참여했던 것도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리처드 마이어 스튜디오에서 2년을 보낸 후, 유현준 동문은 귀국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내 것’을 하고 싶었다. 그는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됐다. 강의 외에 반드시 개인 설계사무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의 채용이라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2005년 부임 후 현재까지 유 동문은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건축은 스타일이 아닌, 관계성에 기반한다 

유현준 동문은 건축이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건축가란 관계를 오케스트레이션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언제나 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와 사람의 관계, 자연과 사람의 관계 등 공간과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를 잘 풀어 주고, 조율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게 하고, 또 어떤 부분은 끊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보는 눈’이 있어야 하죠. 만약 그런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회가 엉망이 될 것입니다. 어떤 건축가는 형태를 중심으로 건축을 보겠지만, 저는 ‘관계성’을 가장 중시합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에서 자신의 작품임이 드러나는, 형태적인 스타일이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오히려 그 시그니처가 없기를 바란다. 대신 보이지 않는 관계에 중심을 두고 계단, 창, 벽 등 다양한 건축 요소들을 통해 그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건축 요소들의 조합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것이 나오고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가 심긴 마당 같은 테라스가 있고 방에서 방을 볼 수 있는 아파트,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느낌이 드는 아파트, 마당이 있는 주택들이 모인 마을 같은 학교 등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이 ‘관계성’에 무게를 두는지 알 수 있다. 


최근 강남구청과 함께 테헤란로에 선보인 ‘세상의 모든 벤치’ 프로젝트는 빌딩 숲속, 그저 지나가기 바쁜 거리에 다양한 벤치를 설치해 보행자들이 잠시 머물며 타인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유현준 동문이 직접 디자인한 벤치를 포함해 개성 있는 열다섯 개의 벤치가 설치됐다. 공간의 관계성을 변화시키는 작은 요소로 벤치를 선택하며 벤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우리 대학교 공과대학 앞의 벤치 공간을 설계한 것도 그다. 작지만 빈 공간에 벤치를 두면서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경험, ‘관계성’이 생긴다. 일종의 ‘이벤트’다.


이렇게 건축에 있어서 관계성을 중시하는 그이기에 인문, 사회, 경제적인 맥락에서 건축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한다. 그간 발행한 책도 다수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의 미래>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셜록현준’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람과 건축에 대한 통찰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건축에 대해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우리의 도시도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채로움이 가득한 도시로의 변화 

‘관계’를 디자인하는 유현준 동문에게 사람과 건축물들이 밀집한 도시, 특히 서울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공간이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별다른 고민 없이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우후죽순 지어진 서울의 빌딩과 아파트의 풍경은 이제 좀 변화할 때가 됐다.

 

“아파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단조로움이 문제라고 봐요.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기에 표준화와 대량생산으로 짓다 보니 규격화된 아파트에서 살게 됐어요. 모양이 같으니 내 집, 나만의 고유한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집값이 되죠. 도시 환경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아파트는 상권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분명 필요합니다. 아파트를 만들면서도 다양하게 지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3천 세대 아파트를 여러 건설사가 참여해 다양하게 만들면 고유한 가치를 높일 수도 있고요. 그리스 산토리니를 보면 다 비슷한 집인 것 같아도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도 고층 건물들이 형태뿐 아니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있어요. 그래서 더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최근 아파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집합 주택의 모습들을 소개해 보여주는 것. 더욱 다양성 있는 한국의 아파트들이 지어질 수 있도록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보존해야 할까, 부숴야 할까

우리나라의 도시화는 주로 70~80년대에 급속하게 진행됐다. 이제 40년 정도 지난 시점, 도시 안에는 최신 건물과 오래된 건물이 공존하며 어떤 곳은 퇴락해 가기도 한다. 때문에 도시 재생, 재건축에 대한 이슈도 계속 생겨난다. 늘 첨예하게 부딪히는 갈등은 ‘보존해야 할 것인가’와 ‘새로 지어야 할 것인가’ 사이에 있다. 그는 둘 다 중요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런던이나 파리 같은 곳들은 전 세계의 부를 다 모아 지은 건축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사실 다시 못 짓습니다. 보존을 해야죠. 그러나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단기간에 지은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세운상가가 대표적인 예일 텐데요, 단순히 추억이 있으니까 보존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 부수는 것이 싫다면 골목길 모양을 보존하고 그 주변은 새롭게 짓는 등 좀 유연하게 다양성을 수용했으면 합니다. 새로 지어야 할 곳에는 과감히 부수고 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낙후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 도시의 문제 중 하나다. 세가 싼 낙후 지역에 젊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이 유입되면서 힙한 거리로 탈바꿈되고, 부동산 가치와 함께 임대료도 올라 결국 그곳의 원주민이나 가치를 높인 아티스트들은 다시 변두리로 내쫓기게 된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쫓겨나는 사람들이 좀 더 스마트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기에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이 건물주가 되는 것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펀드를 만들어 매입하거나 몇몇 가게들이 힘을 모아 구입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좋은 건물주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두 수 앞을 보고 슬럼가의 싼 건물을 사서 그곳을 개성 있게 만들면, 세상을 더 가치 있고 좋게 바꿀 수 있습니다.”



온택트 시대 건축가는 통찰력을 갖춘 코디네이터 

코로나로 인해 급속화된 온택트 시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공간이 더 편안하다. 그런데 건축가란 오프라인 공간에 물리적인 건축물을 짓는 사람이다. 건축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실,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다를 거예요. 초창기 화가는 실체를 똑같이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사진기가 나온 후에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잖아요. 마찬가지로 건축가도 몇십 년 후 미래에 똑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디자인에 관한 더 많은 의사 결정은 인공지능에 의해 진행되겠죠.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좋은 디자인이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과 현실에 맞게 코디네이션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더 큰 그림을 보고 더 깊이 있는 레벨에서 통찰력 있게 판단하고 그것을 조율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온라인상의 가상공간,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건축이란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무중력의 공간이 아니라 현재 우리들이 오프라인에서 겪는 경험을 근거로 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짓는 건축이 온라인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현준 동문은 최근 ‘LG 시그니처 아트 갤러리’ 설계를 맡아 가상의 공간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재 그의 건축사무소에는 주택, 빌딩, 아파트, 관공서, 근린 생활시설 등 차곡차곡 포트폴리오가 쌓여가고 있다. 3~4년 전부터 설계에 착수했던 프로젝트들이 내년도에 본격 착공돼 가시화될 예정이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건축가로서 ‘새로운 주택’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다.


“주택은 모든 건축의 줄기세포예요. 주택에서 방이 여러 개 있으면 호텔이고, 거실이 커지면 컨벤션 홀이 되죠. 또 주택은 다른 어떤 것보다 건축가의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에 차별화된 주택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도 너무 좋은 건축물을 많이 만들었지만 시그니처는 ‘낙수장(Falling Water)’이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와 같은 주택들이에요. 저도 그걸 꼭 이루고 싶어요.” 


건축사무소와 학교를 오가는 일상에서 여전히 책을 쓰고, 방송과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며 숨 고를 새 없이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언제나 자신의 본업은 건축가임을 잊지 않고 있다. 사실 그래서 그는 더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중과 만나려고 노력한다. “20대 남성들이 술 마실 때 건축 이야기를 하는 날까지 계속 건축 얘기를 하겠다.”는 그는 그저 시민들이 더 살기 좋은 공간에 대한 인식을 높여, 건축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공간을 볼 줄 안다는 것은 그 공간을 즐길 줄 알게 된다는 것. 일상 속의 공간, 그곳과 사람의 관계가 결국 우리 삶,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바꿔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된다

어쩌면 그는 유수의 명문 대학 출신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졌고 저명 교수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한, 소위 ‘꽃길’만 걸어온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계획한 것이 한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후배들과도 나누고 싶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사실 하버드와 MIT 두 군데에 지원을 했었는데 하버드에 입학 지원서류를 빠뜨리고 보내는 바람에 MIT에 입학하게 됐어요.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 결국 하버드에서 다시 석사를 하게 된 측면도 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빨리 내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어 교수직을 선택했죠. 한국에서 교수를 한다면 연세에서 하고 싶었는데 임용에서 탈락했어요. 지나고 보니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MIT에 진학한 덕분에 하버드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른 것을 배웠고, 홍대 교수에 임용되면서 강의와 내 작업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또 사무실 초기에는 일거리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시간이 많았던 덕분에 책을 쓰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게 됐죠. 제 인생은 결코 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최선의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차선들이 모여 최선이 된다는 것이에요. 특히 설계를 하는 친구들은 매 순간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불안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거예요. 저 역시 그랬지만 그냥 견뎠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스물다섯 살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뤘어요. 여러분들도 길이 열리는 대로 간다면, 차선이 모여 최선의 길로 안내할 겁니다.” 


건축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확신하는 유현준 동문. 한 가지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았고,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내고 상상하며 실존하는 건축물로 표현해 내는 일이 행복하다. 공간과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건축설계를 하는 일은 그에게 큰 축복이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 갈 새로운 공간, 그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공간 사이에 어떤 새로운 관계와 ‘이벤트’가 생길지 기대된다.